소백산 비로봉 겨울 산행 후기: 칼바람을 통과한 11.4km 기록
1월 3일 새벽 4시 40분, 영하 13도 예보에 긴장한 채 눈을 떴다. 수원 학교에서 7시 출발이라 어둠을 뚫고 파주 집을 나섰다. 소백산 산행이 있는 날이었다. 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비로봉을 찍고 삼가 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11.4km 코스. 초반에는 “생각보다 덜 춥다”는 착각이 들었지만, 고도를 올릴수록 손끝이 얼고 능선에서는 체감 영하 30도에 가까운 소백산 칼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바람을 통과한 뒤에야, 소백산이 왜 ‘겨울에 더 단단해지는 산’인지 알게 됐다.
새벽 출발, 달빛 아래서 시작된 긴 하루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마음은 바빴다. 산행이 있는 날의 아침은 늘 그렇다. 덜 깬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장비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수원으로 가는 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여명이 아주 천천히 밝아왔다. 학교까지 마이카로 달리는 도로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출발지 약속 시간 7시를 겨우 맞췄다. 오는 동안 늦을까 봐 걱정은 했지만 안전하게 집합 장소인 학교에 도착했다. 1월 3일 슈퍼문 소식이 있었는데, 저녁의 온전한 슈퍼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꽉 찬 달이 도서관 위에 떠 있는 모습은 묘하게 든든했다. 새해 달빛은 항상 ‘잘 다녀오라’는 무언의 인사처럼 느껴진다.

7시가 조금 지나 버스가 출발했고, 긴장 반 설렘 반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산은 늘 그렇듯, 오르기 전이 가장 복잡하고, 오르기 시작하면 단순해진다. 하지만 늘 긴장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소백산, 기억이 먼저 정상에 닿는다
소백산은 오랜만이었다. 버스 안에서 창밖 풍경을 보다가 문득 예전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후배들과 처음 소백산을 올랐던 날이 있었다. 그때도 힘들고 어려웠다. 11월의 늦 가을 소백산도 만만하지 않았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왜 오르자고 했지” 같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런데 비로봉 정상에 올라서면, 그런 투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해냈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차올랐다. 그 성취감이 꽤 오래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도 몇 번 소백산에 올랐었다. 이번 산행은 그 기억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산은 변하지 않았는데, 산을 대하는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힘듦을 피하기보다, 힘듦이 주는 선물을 조금 더 믿게 된 쪽으로 말이다.
소백산 겨울 산행 코스와 체감 난이도
이번 코스는 총 11.4km, 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을 거쳐 삼가 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약 5시간 반 일정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정직해 보이지만, 겨울 산행은 ‘바람’과 ‘노면’이 난이도를 결정한다. 같은 거리라도 눈과 얼음, 그리고 노출된 능선의 바람은 완전히 다른 게임을 만든다.

- 천동 탐방지원센터 → 비로봉: 5.9km(약 3시간 30분), 450m → 1,439m
- 비로봉 → 삼가 탐방지원센터: 5.5km(약 2시간), 1,439m → 400m
산악부 리딩으로 몸풀기 체조를 하고 출발했다. 준비 운동은 지루해 보이지만, 겨울 산에서는 그 몇 분이 부상을 줄인다. 산은 ‘체력’보다 ‘무사함’이 먼저다.

아이젠을 신는 순간부터 진짜 겨울이 시작된다
이제 본격적인 소백산 산행 시작이다. 매번 산행 시작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다. 까마득해 보이는 코스가 머리를 스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들머리에서는 바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고도를 올리자 길은 눈과 얼음으로 바뀌었고, 일행은 잠시 멈춰 정비했다. 땀이 나기 시작해 외투 속 패딩을 벗고, 아이젠을 착용했다. 아이젠을 신는 순간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발을 놓는 방식, 체중 이동, 한 걸음의 각도가 전부 ‘안전’이라는 단어로 수렴한다.

손끝이 시려오고, 얼어붙은 손가락이 저릴 때는 장갑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버틴다. 고통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장갑을 겹쳐 착용했지만, 차가운 한기를 막아 내기에는 부족했다. 한참 걸어 온기가 돌면서 손끝 감각이 살아났다. 겨울 산은 이렇게 ‘죽을 것 같음’과 ‘살 만함’ 사이를 여러 번 오간다.


비로봉 능선의 칼바람, 소백산이 내는 시험문제
정상 부근에 오르자 조망이 탁 트였다. 처음으로 풍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겹겹이 포개진 산등성이가 길게 이어지고, 멀리 연화봉 천문대도 보였다. 힘든 산행이 단숨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언제 봐도 멋진 장면이 펼쳐지자 그동안의 힘듦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그 전망대 부근부터 바람이 본색을 드러냈다. 소백산 칼바람은 단순히 춥다는 느낌이 아니다. 몸의 균형을 흔들고, 얼굴 근육을 굳게 만들고, “여기에 오래 있지 마라”라고 말하는 듯한 기세였다. 비로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능선 길은 특히 그랬다. 넋 놓고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바람은 상상을 초월했다. 잠깐 방심하면 중심을 잃을 정도였다.

칼바람을 뚫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추위의 공포가 밀려 들었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이곳 소백산 찬바람 속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드디어 비로봉 정상. 정상석 앞에는 긴 줄이 생겼고, 인증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 사이로 칼바람이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누군가는 휘청이고, 누군가는 몸을 낮췄다.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를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겨울 소백산’은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 덕분에, 정상의 한 장면은 더 오래 남았다. 쉽게 얻은 풍경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니까.


칼바람이 부는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그 어느 감동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연의 현상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그런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편안함을 버리고 힘들게 오른 겨울 산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마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전리품 같은 것일까.



하산, 그리고 산에서만 가능한 ‘온기 회복’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정상 너머로 내려서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아까 그 능선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생기자 걸음에도 여유가 붙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서로를 축하했다. 막걸리, 따끈한 라면과 어묵탕, 구운 계란, 두부김치. 몸속으로 온기가 퍼지며 겨울 산행의 의미가 다시 정리된다. 힘듦을 견딘 뒤의 따뜻함은, 그냥 따뜻함이 아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눈의 선물이라면, 하산길의 한 끼는 몸의 선물이다.

마지막 하산길은 또 다른 집중이 필요했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내림 뒤에는 다시 오름이 온다. 산에서 배운 이 단순한 원리는, 이상하게도 삶에서도 자주 맞아떨어진다.

마무리, 비로봉 칼바람을 기억하는 이유
모든 일행이 안전하게 하산했고, 수고한 나에게 삼계탕 한 그릇을 선물했다. 새해 첫 국립공원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만난 칼바람은 잊기 어렵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칼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르지만, 오늘의 한 장면이 조용한 자신감으로 남을 것 같다. 예전 후배들과 올랐던 그날처럼, 힘들어도 끝내 정상에서 성취감을 맛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소백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또 한 번 그 바람을 통과했다. 강력한 에너지원의 기억으로 앵커링 되었다.
내부 링크: 등산 장비 리스트 / NLP 자원 개발과 앵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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