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파주 봉서산 눈꽃 산행, 봄을 시샘한 하얀 선물
어느새 겨울은 가고, 성큼 봄이 다가왔다. 지난 겨울의 차디찬 바람은 잦아들었고, 곳곳에는 봄을 재촉하는 온기가 피어난다. 이제 곧 봄의 전령이 날아들고, 봄꽃으로 산과 들을 수놓을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런 봄날에 눈꽃 산행이란 선물을 받았다.
봄의 초입, 봉서산에 오르다
우수(雨水)를 지난 3월 3일 정월대보름,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 같은 아침이다. 거리에는 지난밤 내린 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봉서산은 어떨지 걱정을 안고 산행을 떠나본다. 큰 기대 없이 매번 오르던 봉서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지역의 무명산이지만, 그 속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자연은 언제나 새로운 나를 일깨워 준다. 봉서산은 내게 그런 산이다.

오늘 아침, 다소 쌀쌀해진 초봄의 날씨 속에 집을 나섰다. 통일공원에 주차를 하고 봉서산 들머리로 발길을 옮겼다. 아직은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이 을씨년스럽다. 한겨울 벗어버린 솔잎들이 등산로의 흙을 덮어 푹신한 매트리스처럼 길을 열어 준다. 덕분에 지난밤 내린 진눈개비로 질퍽해졌을 길을 말끔히 덮어 주어, 걷는 길이 한결 편안하다.

이제 곧 봄기운이 일어나면 숨어 있던 새싹이 얼어붙었던 나뭇가지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곧 만나게 될 초록의 산길이 벌써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경칩(驚蟄)을 앞둔 올봄에는 어떤 희망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앞선다. 봉서산 등산로에서 만난 겨울나무들은 멀지 않은 봄의 기운을 조용히 전하고 있는 듯했다.
봉서산에서 만난 풍경
익숙한 등산로에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눈앞에 나타난 풍경은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의 봉서산이 밤새 하얗게 설국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신선이 사는 그림 속 한 장면 같은 몽환적인 풍경 앞에서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유난히 눈이 귀했던 이번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설산이었다.

걷던 길 왼쪽 공터에 올라서자 멀리 펼쳐진 산그리메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산줄기들이 장관이다. 멀리 우뚝 솟은 감악산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붓으로 흰 물감을 찍어 바른 듯한 감악산은 멀어져 가는 마지막 겨울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산행에서 만나는 반가운 친구
잠시 설산의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봉서산 자락에 사는 귀여운 짱구 녀석은 오늘도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익숙한 듯 철망에 찰싹 붙어 어서 쓰다듬어 달라는 포즈를 취한다. 먹을 것을 한 번도 준 적 없는, 그저 집 앞을 지나다니는 나그네 같은 나에게 어느새 정을 나눠 준 짱구다. 우연히 주인이 부르던 이름을 듣고서야 짱구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이 녀석은 나와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봉서산에 오를 때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에 자리한 짱구 덕분에 산에 오르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그렇게 짱구는 내 봉서산 산행의 또 다른 설렘이 되었다.

설국의 정취 속으로
길을 걷자 조금 더 가까워진 봉서산 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새하얀 옷을 입은 봉서산이 낯설기도 하지만, 다음 겨울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3월의 눈 덮인 모습이 그저 아름답다. 흰 도화지 위에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눈 덮인 나무들이 마치 동화 속 설국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봉서산 정상 전 마지막 계단길.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소리를 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는 솜사탕 같은 눈뭉치가 개구쟁이처럼 매달려 여린 잎을 장난스럽게 누르고 있다. 걸어 올라온 계단길을 내려다보니 겨울 왕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다시 눈 덮인 한겨울의 시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듯한 순간이었다.


파주 봉서산 정상에서 만난 북한산
드디어 봉서산 정상. 해발 21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명산 부럽지 않은 최고의 산이다. 정상 정자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유난히 곱다.

정자를 지나 봉황의 상징 포토존에 도착했다. 하늘은 구름으로 잔뜩 흐려 있었지만,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는 시원한 가시거리를 선물했다. 탁 트인 시야 너머로 펼쳐진 산줄기들. 그 끝에 자리한 북한산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신비로운 설산의 정취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봉서산 등산의 마지막 종착지인 전망 데크에 도착했다. 나무에 핀 눈꽃들이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다. 한 폭의 그림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그 모습이 멋졌다.

다시 펼쳐진 탁 트인 광경. 그 너머로 조금 전 보았던 북한산이 또 한 번 시선을 끌어당긴다. 강렬한 위용을 드러낸 북한산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 설산 풍경을 봄맞이 선물처럼 내게 건네는 듯했다.



하산길에서의 단상
내려오는 길, 문득 생각에 잠겼다. 해발 200미터 남짓한 이 나지막한 산이 오늘 내게 준 감동은 그 어떤 명산의 위용보다 거대했다. 우리는 늘 더 높은 곳, 더 화려한 풍경만을 쫓으며 살아가지만, 자연은 가끔 이렇게 익숙하고 낮은 곳에서도 예상치 못한 선물을 건네곤 한다.
어쩌면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큰 기대를 비워냈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뜻밖의 설국처럼,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을 열어두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나’와 조우할 수 있다. 먹이 한 번 준 적 없는 내게 온기를 나눠준 짱구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연결이 주는 위안도 다시금 깨달았다.
봉서산 눈꽃 산행을 마치며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이 하얀 풍경은 단순히 지나가는 계절의 잔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다가올 봄의 생명력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정돈하라는 자연의 나지막한 격려였다.
산행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문산시장에 있는 단골 칼국수집에 들렀다. 따끈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이 일품인 칼국수 한 그릇으로 봉서산에서의 마지막 눈꽃 산행을 조용히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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